[[주식공부]] - [주식공부] 워렌버핏의 일생 (1)

 

[주식공부] 워렌버핏의 일생 (1)

세계에서 3번째 부자, 세계적인 투자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죠. 바로 워렌버핏입니다. 통 큰 기부도 하고 노블레스오블리제를 실천하며 모두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죠. 오늘은 워렌버핏에 대해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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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워렌버핏의 어렸을 적 스토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2편은 버핏이 주식시장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대학교 진학 이후를 알아보겠습니다.

 

 

 

 

 

버핏은 주식투자로 어느정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대학교 진학에 대해 생각지도 않았습니다만 자신이 동경하는 아버지가 대학교 진학을 원하고 있었기에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스쿨에 입학을 합니다.

 

 

 

 

버핏은 많은 양의 독서와 경험으로 이미 투자와 경제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험 전날밤 펩시콜라를 마시며 다음날 시험을 봐도 만점을 맞을 만큼 배울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네브라스카 대학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곳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충격에 빠집니다.

 

 

 

버핏은 그 때 당시 스스로 차트를 만들고 그래프를 그리는 등 기술적분석에 빠져 있었지만 돈을 많이 벌진 못했습니다.

 

 

 

 

투기가 판치는 주식시장에서 처음으로 과학적인 투자방법을 제시한 가치투자를 주장하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 평생의 정신적 지주, 구세주였습니다.

 

 

 

네브라스카 대학을 졸업 후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에 지원했지만 떨어지고 그 해 대학 공시게시판에 게시된 콜롬비아 대학교 강사진 명단에 벤저민 그레이엄과 도드가 있어 편지를 썼습니다.

 

 

 

 

'도드 교수님께, 저는 교수님이 돌아가신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콜롬비아 대학에 계신걸 알았으니 정말 입학하고 싶습니다.' 라는 내용으로요.

 

 

 

편지의 영향 때문인지 입학을 허가 해줬고 콜롬비아 대학 경영학과로 입학하게 됩니다.

 

 

 

 

인생사 어떻게 될 지 모르죠?

 

 

 

 

콜롬비아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된 워렌버핏은 가치투자의 거장이자 '현명한 투자자'의 저자인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로부터 가치투자에 대해 눈을 뜨게 됩니다.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버핏은 이렇게 비유를 합니다. '4할 타자에게 야구를 배우는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라고

 

 

 

 

버핏은 졸업 후에 그레이엄이 GEICO라는 회사의 이사로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본사를 찾아가 회사의 경영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GEICO는 보험회사였으며 보험사업과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GEICO회사 주식을 일부 매수합니다.

 

 

 

이 때 쯤 버핏의 재산은 9800달러..

 

 

 

 

버핏은 뉴욕에 있는 그레이엄의 투자회사 그레이엄 뉴먼에서 일하기를 원하여 편지를 보내고 마침내 승낙을 받아 일을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배우게 되고, 1956년 그레이엄 뉴먼이 해산합니다.

 

 

 

이 때 버핏의 재산은 14만 달러였습니다.

 

 

 

 

버핏은 23살에 수지와 결혼을 하고 집 2층에서 혼자서 11개의 투자조합을 운영하고 그 조합의 증권도 직접 관리하게 됩니다.

 

 

 

1956년 첫번째 투자조합인 '버핏 어소시에이츠(Buffet Associates)'를 설립하였고 4명의 가족과 3명의 친구에게서 투자받은 105,000달러에 워렌 버핏이 100달러를 보태 모두 105,100달러의 종잣돈으로 시작했습니다.

 

 

 

 

1958년에는 지금까지 살고 있는 오마하 집을 3만 달러에 매수합니다.

 

 

 

그리고 무디스 매뉴얼(상장기업편람)을 구매하여 한장 씩 넘겨가며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했습니다.

 

 

 

투자자들에게 운영 원칙을 공개했습니다.

 

 

적당한 가격의 주식을 찾아 기꺼이 투자한다.

미 재무부 채권(국채) 수익률인 6퍼센트를 넘어서는 수익률을 올리지 못하면 워렌 버핏은 단 1퍼센트의 수수료도 받지 않는다.

워렌 버핏이 받는 연간 수수료는 전체 수익률 중에서 미 재무부 채권 수익률인 6퍼센트를 제외한 수익의 25퍼센트이다.

투자자들은 워렌 버핏의 투자법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이 질문을 해 와도 워렌 버핏은 대답할 의무가 없다.

워렌 버핏은 1년에 한두 번만 새로운 종목에 투자한다.

 

 

 

그 당시 담배꽁초식 투자로 소외된 소형주로 많은 돈을 벌었으며,

 

 

 

1957년부터 1969년까지 13년간 버핏은 29.5퍼센트의 연평균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1만 달러가 13년이 지나 30만 달러로 불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1,000만 원이 3억 원으로 불어난 셈이죠.

 

 

 

 

투자기간 중 1959년에 버핏의 평생 동반자인 찰리멍거를 만나게 되고 투자의 원칙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버핏은 장부가 대비 주가가 싸다고 생각하면 매수하였었습니다. 경영이나 실적이 형편없어도 말이죠.

 

 

 

그러했던 버핏은 찰리멍거에게 큰 영향을 받고, 훌륭한 기업을 적정한 가격에 사는 등 원칙으로 말이죠.

 

 

 

보통 기업을 매우 싼 가격으로 사는 방식 대신에요.

 

 

 

 

 

"워렌 버핏에게 투자하면 돈을 불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오마하의 지역 유지들이 너도나도 돈을 맡기자 워렌 버핏은 버핏 어소시에츠 외에 '버핏 펀드', '언더우드' 7개의 파트너십을 동시에 운영하다가 1961년에 '버핏 투자조합'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했습니다.

 

 

 

그리고 버핏은 조합이 커지고 총회 등 발표, 연설 자리가 많아지자 무대공포증이 있었던 버핏은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당시 데일 카네기의 강의를 들었으며,

 

 

 

아마 그 때 당시에 인생이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버핏은 자본시장에 대처하는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이는 자본시장이라는 게임에 플레이어로써 자신의 능력이 게임 전략짜는데 특화되어 있어 운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 자신의 강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능력의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능력 범위 바깥에 있는 것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으면 된다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버핏은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의 과학이라는 책에 스트라이크존이 있는데 투자는 삼진 아웃이 없기 때문에 좋은 사업을 취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즉 좋은 공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점이죠, 사람들이 '휘두르라고 멍청아!'라고 말을 하면 무시하라고 말이죠. 

 

 

 

 

3편에서는 워렌버핏과 버크셔 해서웨이와의 만남과 그 이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주식공부]] - [주식공부] 워렌버핏의 일생 (3)

 

[주식공부] 워렌버핏의 일생 (3)

2편에서 워렌버핏의 대학교 진학 이후 투자 스토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3편은 워렌버핏과 버크셔 해서웨이와의 만남과 그 이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버핏은 1962년 처음 직물공장인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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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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