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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공부] 워렌버핏의 일생 (2)

[[주식공부]] - [주식공부] 워렌버핏의 일생 (1) [주식공부] 워렌버핏의 일생 (1) 세계에서 3번째 부자, 세계적인 투자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죠. 바로 워렌버핏입니다. 통 큰 기부도 하고 노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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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워렌버핏의 대학교 진학 이후 투자 스토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3편은 워렌버핏과 버크셔 해서웨이와의 만남과 그 이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버핏은 1962년 처음 직물공장인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샀습니다.

 

 

 

 

이 때부터 버크셔 해서웨이와의 인연이 시작되죠.

 

 

 

 

 

사장될 사업이고, 가격은 장부가 대비 무척 쌌습니다. 버크셔 공장은 하나씩 문을 닫았고, 문을 닫으면서 자본금을 축적했고, 그 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기 시작했고, 버핏도 매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경영진은 버핏에게 얼마에 주식을 팔기 원하냐고 했고 주당 11.5달러를 요구했습니다. 이후 공개매수를 했는대 공개매수가는 11.375달러였습니다.

 

 

 

요구한 가격보다 저렴하게 거래가 되자 화가 난 버핏은 주식을 더 삽니다.

 

 

 

 

19653월 주식을 충분히 매입해 회사의 지배권을 갖게 되었고 경영방침을 바꾸었습니다.

 

 

 

 

 

버핏은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주식을 매입한 것에 대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든시기에 감정적인 우발적 판단이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잘되서 지금은 워렌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가 있게 된 것이죠.

 

 

 

 

 

 

그 와중 1960년대 후반은 거짓된 장부와 이를 이용한 사기꾼들이 월가를 점령하고 있었고, 버핏은 그런 사기극에 끼어들기 싫어 1969년에 투자조합을 해산시키고,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이 되고 나서 버크셔 해서웨이를 투자의 도구로 이용합니다.

 

 

 

 

 

 

여러 보험사를 인수했고, 인수한 보험사의 잉여현금자본으로 투자를 한 것이죠.

 

 

 

 

 

당시 미국은 회사를 투자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의 유보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였기에 버핏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보험사를 선택했고,

 

 

 

 

 

 

버크셔 해서웨이의 운영 원칙은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하여 차익거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버핏이 투자조합을 운영할 때와 버크셔 해서웨이를 운영할 때의 다른 점은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운영하느냐, 보험사의 잉여현금자본으로 운영하느냐였죠.

 

 

 

 

버핏의 투자조합을 운영할 때와는 다른 점은 그런 비지니스를 헐 값에 사서 한모금만 빨고 버리는 담배꽁초식 투자였다면 버크셔 해서웨이의 운영 원칙은 훌륭한 비즈니스를 적절한 값에 사는 투자 방식으로 바뀌게 된 점입니다.

 

 

 

 

 

버크셔 헤서웨이에서 일하는 직원은 25명으로 현재도 25명이라고 합니다.

 

 

 

 

 

버크셔 헤서웨이는 어떠한 운영회도 없으며, 홍보실도 갖고 있지 않고 기업홍보, 정책회의도 하지 않습니다. 인사부도 없습니다.

 

 

 

 

 

형식적인 것은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1972년 주식시장은 상승장으로, 주가를 판단했을 때 높다고 판단되어 살게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성욕에 가득찬 남자가 무인도에 있는 것 같다'라고 말을 합니다.

 

 

 

 

 

1973년에는 제1차오일쇼크와 닉슨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1929년 경제대공황 이후 커다란 폭락장이 시작됩니다.

 

 

 

이때 버핏은 '성욕에 가득찬 남자가 하렘에 있는 것 같다.'라고 말을 하며 본격적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주식들을 매수하게 되죠.

 

 

 

 

워싱턴포스트의 최대 주주가 되었고 시즈캔디, 오길비 & 매더, 캐피털 시티즈, GEICO 등에 투자를 하고요,

 

 

 

 

1979년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2배 급등하고, 당시 보유중이던 워싱턴 포스트는 4배, GEICO는 2배 등 수익을 냅니다.

당시 버핏의 포트폴리오는 경기 방어 업종 위주로 투자하였습니다.

 

 

 

1985년 GEICO는 13배, 워싱턴포스트는 21배로 올랐으며,

 

 

1986년 주식시장이 또다시 상승하여 버핏은 주가가 고평가 되었다고 판단되는 주식을 워싱턴포스트, 캐피털 시티즈, GEICO 3종목을 제외하고 점점 줄이게 됩니다.

 

 

 

 

 

19871029일 블랙먼데이로 인해 또다시 주식시장에 커다란 폭락이옵니다.

 

 

 

 

 

1988년 버핏은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코카콜라, 질레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웰스파고, 프레디 맥 등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입니다.

 

 

1990년 걸프전으로 16년만에 큰 하락장이 펼쳐졌지만, 버핏은 경기 방어주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었기에 방어에 성공하고, 세계 부자 2위로 등극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알리게 됩니다.

 

 

 

19919월 버핏이 투자한 투자회사인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부절절한 국채매매로 이슈를 받게 되죠. 월가에 폭풍이 붑니다.

 

 

재무부와 연준, 증권거래소 법무부의 조사를 받게되고, 살로몬 브라더스는 영업정지를 당하게 됩니다.

 

 

 

버핏은 살로몬 브라더스의 의장으로 취임을 한 뒤 모든 책임을 지고 재무부를 재무부 장관을 설득하여 살로몬 브라더스를 살려내죠..

 

 

 

 

 

 

1993년 빌게이츠와 서로 알게됩니다.

 

 

 

빌게이츠는 주식투자를 하는 버핏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버핏과 대화를 하면서 버핏의 능력에 대해 감탄하게 되어 절친이 되죠.

 

 

 

 

 

 

1994년까지 총 10억달러의 코카콜라 주식을 사들였으며, 이는 현재 가치로 80억 달러 이상이 됩니다.

 

 

 

1995GEICO 주식을 전부 사들여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로 두게 됩니다.

 

 

 

 

 

1990년대 후반 미친 듯이 오르는 주식시장에 불안을 느끼고 상대적으로 비싼 주식에 살 게 아무 것도 없다며 지켜보기만 합니다.

 

 

 

1999IT 바람이 불어 주식이 폭등할 때에도 버핏이 모르는 것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며 투자를 하지 않고,

 

 

 

2000IT 버블이 터져 주식시장이 폭락하게 되어 버핏의 능력을 다시한번 새삼 깨닫게 되죠.

 

 

 

 

 

 

 

돈을 버는 방법은 시간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버핏의 사무실에는 1929년 모두가 공포에 떨었던 대공황 당시 신문을 스크랩 해두고 항상 상기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버핏은 검소하기로도 유명하죠. 출근할 때는 코카콜라에 맥도날드세트를 즐겨 먹으며 사치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버크셔해서웨이를 100여개의 사업체를 가진 지주회사로 키워낸 워렌버핏

 

 

 

 

 

 

기부에 있어서도 인색하지 않습니다. 5년간 147억달러(17조원)을 빈곤 퇴치와 소아마비, 에이즈 치료 등 분야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게이츠의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기부를 합니다.

 

 

 

 

지금까지 계속하여 역사를 써가고 있는 워렌버핏의 일생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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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공부] 워렌버핏 히팅존

위 그림은 테드윌리엄스의 히팅존입니다. 매우 유명한 그림이죠. 워렌버핏의 사무실에 걸려있는 그림으로도 유명합니다. 자 그럼 테드윌리엄스가 누구이며, 왜 워렌버핏의 사무실에 걸려있을까? 테드윌리엄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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